Sunday, 28 September 2008

The Hellish School Life (Episode II)

학교 다니는 것이 즐겁고 유일한 낙인 나에게 늑깎이 공부는 더할나위 없이 즐겁다.  단지 예전에 비해서 주변에 보이는 사물과 사람이 같은 것이 아니라서 내가 읽는 책과 논문 모두는 나의 것이 아니고 내가 같이 하는 공동체의 공동 소유물이 되어서 무엇보다도 지적재산권 시비에 말릴 듯 하여 조심스러워 진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학생들이 편집을 잘하여 논문을 쓰고 학위를 취득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외국과 의견 조율을 하기에 너무나 턱없이 부족한 시간과 돈이라고 생각한다.  일년남짓 정말로 올인을 하여 열심히 공부를 하려고 한다.  내가 후회없이 할 수 있는 일들과 프로젝트들은 모두 지금 다 이루어야 할 일 들이기에 예전에 여유있게 한 공부가 이제는 그렇게 쉽지가 않다.

혹시 주변에서 듣고 나쁜 생각을 하게 될 지, 아님 문제를 만들어서 사회를 어지럽게 만들지, 내가 생각하는 모든 생각과 이론이 주변 이들의 눈살을 찌뿌리게 만들지는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국인과 미국인, 이태리인은 그렇지가 않다.  미국, 이태리, 한국, 이 세개의 나라는 내가 아는 세계 전부이다.  더욱 잘 알기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이러한 종류의 투자를 무척 기피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 

옛날에는 직접 이동하면서 기록하고 대화하고 전쟁도 하면서 어렵게 공부를 했지만 이제는 편하게 집에서 노트북 하나로 세계 여러곳의 나라에 대해서 탐방을 하여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만이 아는 세계가 아니라 각양각색의 인종과 신분, 계급을 모두 초월한 지상천국에서 나의 생활은 무척 즐거워 진다.

다행히 부모와 친, 인척, 주변 이웃 모두 그다지 크게 상관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납치, 유괴되는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나도 학부모가 되어서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행동을 같이 하려고 한다.

내가 아는 학교는 이제 닫힌 상아탑이 아니다.  어디를 가나 내가 아는 사람과 사물, 그리고 이웃들을 만날수 있는 지상 천국과 낙원, 그것이 내가 평생동안 이루고 싶은 소원이다.  더이상 친구와 적이 아닌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같이 맑고 깨끗한 공기를 같이 마시고 호흡하며 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다짐으로 나는 더욱더 책임감을 가지고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한다.

더욱더 모범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서 많은 좋은 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여 본다.

Saturday, 27 September 2008

The Hellish School Life (Episode I)

내가 처음 학교에 입학해서 학생이 되어 공부를 시작한 때는 한국 나이로 여덟살이 되어서였다.  책가방 매고 너무나 좋아서 학교에 정말로 가고 싶다며 동네 한바퀴를 소리소리 지르며 "아저씨, 아줌마, 저 학교가요.  정말로 공부 열심히 할 거에요!!!"하면서 열심히 돌아다녔다.  우선은 그 굳은 다짐을 모든 이가 다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책가방 매고 아침마다 등교하는 오빠, 언니가 너무나 부러웠는데 드디어 나도 학교를 다니게 됬다고 너무나 기쁘고 행복해서 집과 학교 근처의 아파트와 백화점, 구멍가게 곳곳마다 돌아다니면서 동네 이웃들 모두에게 나를 소개했다.  "신촌 초등학교 1학년 최자윤이에요..."  주변에 보는 사람들이나 방문하는 장소는 내가 특별하게 지정하지는 앉았지만 정말로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그래 작은 두발로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다 가보는 거야.  사실 집에서 학교까지는 무척 먼 거리었다.  그래도 작은 발로 열심히 뛰고 걸어 다녔다. 

내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을 한 뒤에 한 일은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잘 지내보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부를 열심히 했다.  성적도 좋고 주변 이웃들과 학교 직원 및 선생님, 학생 모두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었다.  아침에 등교하면 교문에서 교장선생님이 학생들 모두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응대를 하시고 학생들 모두는 반드시 교장선생님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 등교길이 익숙하지가 않은데도 엄마는 같이 가 주지 않으셨고, 반드시 혼자 등교를 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구불 구불 모르는 길을 다 통과해서 학교까지 가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큰 하나의 과제이자 숙제였는데, 엄마는 항상 집에서 내게 이 모든 과제를 다 마쳐야 한다고 채근해셨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밖에서 친구들 혹은 혼자서 노는 시간이 무척 많았기에 나는 너무나 뛸듯이 기뻤고 더욱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지금은 학교를 졸업한지 꽤 되는 늑깎이 아줌마가 되었다.  어른이 되서 책을 다시 본다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듯하다.  등교시 손 흔들고 악수해 주시는 교장선생님도 없고 주변의 이웃과 친지, 가족 모두의 양해를 얻으며 나만의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수행하기가 무척 힘이 들다.  그러나 공부는 평생 공부라고 배운 내게 책보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닌 것 같다.  문제는 책을 이해할 때 전과 무척 달라져서 주변을 열심히 뛰어 다니며 소리소리 지르던 어린 시절과 달리 어른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과 규율, 규칙, 법이 있기에 무척 조심스러워 진다.  어린이를 주의깊게 지켜보는 어른은 있지가 않다.  그러나 어른들은 서로를 끊임없이 견제하고 또 견제하기 때문에 어른, 성인이 된 지금의 나는 다른 모습으로 거듭 나기를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예전과 같은 자유가 없는 지금 다시 책을 보기 시작하며 내게 주어진 과제는 나의 인생을 더욱더 책임감을 가지고 완성해 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다 더욱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더욱더 사랑받는 사람이 되며 사랑을 줄 수 있는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Friday, 12 September 2008

우리집 식구의 추석 나기 제 1화

올해 막내를 장가보내고 가족이 처음으로 같이 추석을 보낸다.  무엇보다 가족 한 사람이 더 늘어나서 좋고 앞으로 아기가 태어나면 더욱더 가족이 평화롭고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두 아이들이 모두가 건강하고 튼튼하기 때문에 아기도 건강하고 튼튼하고 공부잘하고 착하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새로운 식구 모두 할 일이 많아 지는 것 같다.  추석은 한국의 Thanksgiving Day이다.  한국에는 달리 국가의 종교가 없어진 오늘날 구식으로 옛 왕정때의 가족 모시기와 가족 중심의 사고가 조금은 어색해 진 시점에서 추석을 온 가족과 같이 하는 오늘, 내일은 정말로 가족의 역사 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같이 하여 무엇인가가 해내고 있는 듯한 뿌듯한 마음으로 기쁘기 그지없다.  내가 태어난 조국과 사람들 모두가 하나가 되어 같은 땅에서 태어난 그 날을 기억하고 더 나아가서는 모두가 더욱 풍요롭고 여유로운 조국을 만들어 간다는 데에서 외국의 Thanksgiving Day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추석에 한 집에 모여서 반찬 만들고 제사 음식 만들고 같이 오손도손 모여 앉아서 묵은 얘기, 새로운 소식 모두를 같이 하는 그 시간 만큼 소중한 일은 없다고 하겠다.  요즘은 애국자가 되어야지 생존하는 시대이며 추석에 가족 행사에 참석하여 가족과 같이 하는 그 시간과 행위 모두는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행복하고 기쁜 사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추석이 단풍과 솔잎, 그리고 송편을 먹는 날로 기억이 되지 않을 것이다.  조금 욕심을 내 본다면 나라 만들기에 우리 가족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일편단심으로 열심히 살고 반드시 생존해야 할 것이다.  요즈음 같이 힘든 시절에 어려운 이웃과 같이 아픔과 슬픔을 같이 하고 모두가 같이 희노애락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바로 큰 집이 아닌가 한다.  또한 추석은 좋은 명절이고 가족 식구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모두 하나가 되어 한국의 역사를 같이 만들어가는 소중한 시간이 아닌가 한다.